‘마지막 강의’가 끝났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밝은 미소로 삶과 꿈을 얘기한 ‘마지막 강의’ 동영상으로 세계를 감동시켰던 랜디 포시 미국 카네기멜런대 교수가 25일 오전 4시(현지시간) 생을 마쳤다. 48세. 버지니아주 체사피크의 자택에서 가족과 친지들에게 둘러싸여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

포시 교수의 임종을 지켰던 그의 친구는 “랜디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농담을 했다”고 말했다. 아내 재이는 “남편을 격려해준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남편은 자신의 강의와 책이, 사람들이 삶을 특히 자녀와의 관계를 돌아보는 데 영향을 줬다는 것을 늘 자랑스러워했다”고 말했다.

포시 교수의 동영상(www.thelastlecture.com)은 유튜브 등을 통해 1000만 명 이상이 지켜봤다. 그의 저서 『마지막 강의』는 올해 4월 출간되자마자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라 지금까지 600만 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다. 그의 강의 덕분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욱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됐다는 사람, 자기 연민을 버릴 수 있었다는 사람, 자살하려는 마음을 돌이켰다는 사람이 숱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도 포시 교수 덕분에 삶을 긍정적으로 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건강하게 죽어 가는 사람’으로 불렸다. 월스트리트저널, ‘오프라 쇼’ 등 주요 언론과 방송 프로그램이 그를 조명했고 ABC뉴스가 ‘2007년 올해의 인물’로, 타임이 ‘2007년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으로 그를 꼽았다.

상처 입은 사자도 포효한다
‘마지막 강의’는 하마터면 못할 뻔했다. 포시 교수의 아내가 만류했기 때문이다. “날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좋아요. 남은 시간 동안 당신을 독점하고 싶어요. 피츠버그까지 강의하러 가는 동안 아이들과 나는 그 시간을 영영 잃어버리는 거잖아요?” 그는 2006년 9월 암 선고를 받은 뒤 카네기멜런대가 있는 피츠버그에서 아내의 친정 근처인 버지니아주로 이사해 가족과 함께 지내던 중이었다. 포시 교수는 “상처 입은 사자라도 포효하고 싶다”며 마지막 말을 남기러 떠났다. 하지만 그도 지금과 같은 반향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150명밖에 오지 않을 것이라고 동료 교수와 50달러 내기까지 했다. 그가 졌다. 강연장 400석이 꽉 찼다.

‘어린 시절의 꿈을 실현하는 법’이란 제목에 걸맞지 않게 강의용 스크린을 처음 메운 것은 CT 촬영 사진이었다. 10개의 종양이 전이된 포시 교수의 간이었다. “저는 췌장암에 걸렸고 앞으로 몇 달 못 삽니다.” 밝은 미소에 거침없는 말투였다. 한 손으로 여유 있게 팔굽혀펴기까지 해 보였다. “제가 우울할 것 같나요? 그렇다면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하군요.” 그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추억한 뒤 “남은 날들도 신나게 살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것밖에 길이 없기 때문”이라며. 죽음을 앞에 두고 삶을 말하는 그에게 청중은 매료됐다. 76분간의 강의를 찍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랐다. 이날 강의를 들었던 월스트리트저널의 칼럼니스트 제프리 재슬로가 신문에 기사를 썼다. 2007년 9월 ‘마지막 강의’의 전설이 그렇게 시작됐다.

포기하지 마세요, 감사하세요, 정직하세요
포시 교수는 ‘성공한 사람’이다. 브라운대를 졸업하고 카네기멜런대에서 컴퓨터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화기술(CT)의 메카로 꼽히는 카네기멜런대 엔터테인먼트 기술센터(ETC)를 공동 설립해 이끌어 왔다. 가상현실 분야의 개척자며, 100만 명이 사용하는 3차원 입체(3D) 애니메이션 프로그램 ‘앨리스’의 개발자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꿈은 ‘놀이공원에서 아주 커다란 봉제 인형을 따고, 월드 북 백과사전을 만들어 보고, 디즈니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꿈은 이루어졌다. 그는 마지막 강의에서 그때까지 그가 딴 수많은 봉제 인형을 ‘증거’로 보여주며 청중에게 나눠 줬다. 월드 북의 가상현실 항목도 저술했다. 디즈니 엔지니어가 되려는 꿈은 이루기 어려웠다. “‘저리 꺼져 버려’라는 이 멋진 편지들을 좀 보세요.” 포시 교수는 디즈니가 그의 입사를 거절한 편지를 여러 장 화면으로 보여주며 청중을 웃겼다. “장애물을 만나고 나면 내가 얼마나 그 소원을 이루고 싶었는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어요. 장애물은 나만큼 간절히 원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막아 주기 위해 거기 있는 것이랍니다.” 그는 교수가 되고 난 뒤 디즈니의 ‘알라딘’ 프로젝트에 참여해 꿈을 이뤘다.

그는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아간다고 말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저는 매일을 선물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이젠 (그 선물에 대한) 감사 편지를 보낼 곳을 찾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췌장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자동차 사고나 심장마비와 달리 앞날을 준비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포시 교수는 “내 강의는 꿈을 이루는 방법이 아니라 삶을 살아 가는 방식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삶의 방식으로 첫손에 꼽은 것은 ‘정직’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제가 세 마디만 남길 수 있다면 ‘Tell the truth(진실을 말하렴)’라고 하겠어요. 세 마디를 더 보탤 수 있다면 ‘all the time(언제나)’.”

48세 아버지가 남긴 선물
포시 교수는 아내와 세 자녀를 두고 세상을 떠났다. 딜런(6)·로건(3) 두 아들과 막내딸 클로에(2). 죽음마저 담담하게 받아들인 그도 가족을 두고 갈 생각에 샤워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아이들이 커 나가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서가 아니라 아버지로서 해줄 수 없는 것들이 슬퍼서”였다. 어려서 부모를 잃었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물었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알게 되면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대답에 아이들과 추억 만들기에 나섰다. 돌고래와 함께 헤엄치는 체험 여행을 딜런과 떠났고, 로건을 데리고 미키마우스를 만나러 디즈니 월드에 갔다. 아내에겐 ‘마지막 강의’ 끝부분에 생일 케이크를 선물했다. 청중이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불렀고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책을 쓴 것도 ‘앞으로 30년 동안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을 3개월 만에 하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다. 그는 자녀들과 잠시라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매일 1시간씩 반드시 해야 하는 자전거 운동 시간에 헤드셋을 쓰고 휴대전화로 53일간 원고를 구술했다.

‘마지막 강의’ 자체가 세 아이를 위한 것이었다. 지금은 너무 어려서 아버지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할 아이들을 위해 그가 남긴 편지다. 포시 교수는 “병에 담아 바다에 띄우는 편지처럼 내 아이들이 언젠가 해안가에서 내 강의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때까지 아버지의 사랑이 가득한 편지는 인터넷의 대양을 항해하며 위로와 희망을 전할 것이다.

구희령 기자